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오 12세 (문단 편집) === 정치적 성향 === || [[파일:external/3.bp.blogspot.com/pacelli2.jpg]] || 비오 12세 본인은 부패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19세기의 교황들 수준으로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물이었다. 후임이 탈권위적이었던 [[요한 23세]]라 더 부각되는 것도 있지만, 사실 비오 12세의 권위주의적 면모는 재임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거의 중세에서나 쓸법한 극존칭이나 예의범절을 요구한다거나…권모술수에 탁월했기에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바티칸]] 정계는 [[2차대전]] 시기를 제외하건 항상 정쟁이 벌어졌다고 할 정도다. 친 교황파와 반 교황파의[* 물론 반 [[교황]]파는 교황의 지나친 권력 집중을 반대했다는 것이지 무슨 쿠테타를 획책했다는 건 아니다. 공화제의 야당 수준.] 대립이 거셌는데, 비오 12세는 친 교황파에게 힘을 실어주고 반 교황파를 견제하는 등의 수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정치적 권력을 가졌던 교황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 아래에 언급할 파스칼리나 수녀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도, 그가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추기경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할 수 있을 정도로 그가 교황으로서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비오 12세의 건강이었다. 재임 후반기에 건강이 악화된 비오 12세는, 도저히 교황으로서 종교적 책무와 정치적 책무를 함께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교황 본인은 종교적 책무에만 집중하고 정치적 책무는 대부분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에게 넘겼다.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는 굉장히 유능했고, 교황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했으며, 정치·종교적 성향까지 비오 12세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오 12세가 하자는 대로 따른 건 아니었다. 사실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가 비오 12세로부터 정치적 권력을 이양받은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바로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강직한 성격이었던 파스칼리나 수녀는 [[하극상|가끔씩 비오 12세가 지시한 내용을 쌩까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비오 12세가 파스칼리나의 뺨까지 때린 적도 있었다.] 당장 비오 12세가 권력을 강화할 때도 파스칼리나 수녀가 참모 겸 행동대장으로 맹활약했다. 능력이나 공로로 보면 비오 12세가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이긴 했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수도회장도 아닌 '''일개 [[수녀]]'''였다는 것이다. 일개 수녀가 바티칸의 [[추기경]] 저리가라 하는 권력을 휘두르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바티칸 정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비오 12세가 한껏 강화시킨 정치권력을 위임받은 파스칼리나 수녀는 이후 수년간 일명 '''여교황'''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바티칸]] 정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이런 상황은 비오 12세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임자인 [[요한 23세]]는 당시 바티칸 고위 성직자들이 보기엔 너무 탈권위적이라 그걸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전권을 넘겨받은 파스칼리나는 좋은 말을 해주며 비오 12세의 비위를 맞춰주기는 커녕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강직한 성품이라서, 비오 12세와 파스칼리나가 서로 언성을 높여 가며 말다툼을 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비오 12세가 화가 난 나머지 파스칼리나의 뺨을 때렸다는 소문까지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 기조는 교황이 된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며, 이를 위해 파시스트와 타협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사제들이 공산주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던 프랑스의 노동 사제 운동[* 사제들이 노동자가 되어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방식으로 선교를 시도했던 운동.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도 공산주의적 성격이 있다는 이유로 금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